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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18 22:44
가야금과 함께한 30년 후회하지않아 [주간불교 매거진]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0,671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고흥곤 선생이 가야금의 소리를 두고 한 말이다. 소리가 ‘서운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만물을 인간과 동일시해왔다지만 요즘 들어서는 보기드문 표현방식이다.

“아직까지 소리가 서운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고흥곤 선생의 표현방식은 비단 소리를 두고서만이 아니다. 기자와 만나는 내내 가야금의 몸통과 안족·줄은 선생의 옆에서 숨쉬고, 선생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사람과 같다는 느낌이다.
가야금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편안한 온도와 습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다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깊은 소리를 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흥곤 선생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경치가 빼어나다거나 조용한 곳은 아니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의 주택가, 그 중의 한 집이다. 집 앞에 ‘중요무형문화재’라는 현판 이외에 별반 특이할 것이 없는 이 집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고 선생과 수많은 가야금들이 우리를 맞았다.

김광주 선생의 집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가야금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이 만든 가야금을 꼼꼼히 살피는 고흥곤 선생이 가야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웃에 사는 민속가야금 제작의 장인 김광주 선생의 집안에 수시로 드나들며 어깨너머로 가야금을 보았고, 이것을 계기로 서 선생의 가야금 연구는 시작됐다.
가야금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대중성을 띄고 있는 산조가야금과 과거 궁중에서 이용된 클래식한 정악가야금의 두 종류로 나뉘어 지는데, 당초 고 선생이 김광주 선생에게 배웠던 것은 산조가야금이다.
그러나 1978년, 고 선생이 본격적으로 가야금 연구를 시작하면서 1983년 옛 정악가야금의 모양을 흉내낼 수 있었다. 전통기법을 구현하면서 전통신라금의 재현에 어느정도 가까워진 고 선생의 가야금은 이후 소리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1985년에는 음색에도 깊이가 더해졌다. 깊은 소리가 알려지면서 고 선생의 정악가야금은 그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운하지 않은 소리를 위한 연구
법금이라고도 불리는 정악가야금은 연주자의 체구와 나무의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10㎝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단다. 이제는 대부분 가야금의 크기가 비슷해졌지만 지금도 고 선생은 연주자의 체구를 고려해 가장 알맞은 크기로 제작하기 위해 애쓴다.
가야금의 몸통은 대개 오동나무로 만드는데, 재질이 좋은 재래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단다. 이렇게 구해진 나무를 자연 속에서 눈과 비, 바람을 맞혀 3∼5년 삭히고 나서 갈라지고 뒤틀리는 나무는 버린다. 그러고 보면 가야금도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골라낸 나무를 깎아 울림통을 만들고 장식을 달고, 인두질을 한다. 누에고치에서 빠져나온 명주 몇 백가지를 꼬아 줄을 만들고, 배나무와 대추나무를 깎아 안족을 만들면 가야금의 겉모양은 다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할 것은 소리. 서운하지 않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료를 삭히는 과정을 빼면 연주용은 한달에 1개 정도, 연습용은 10개 정도를 제작한다는 고 선생은 경우에 따라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30여 년간 가야금을 만들어 오면서 좋은 소리를 낸 것이 100여개 정도라니 가야금 제작의 어려움이 피부로 와 닿는다.

“국악의 길이 좀 더 넓어져야”
고 선생의 가야금 제작은 흔히 중요무형문화재가 그러하듯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거나 특별한 애증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 기법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옛 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선생의 가야금 사랑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왔음을 느낄 수 있다.
가야금에 대한 선생의 애정은 단순히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랜 기간 가야금 연주자들과 친분을 쌓아온 고 선생은 자신이 만든 가야금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연주회에 자주 참석해 소리의 깊이를 읽으려 노력하고, 더 좋은 음감을 갖기 위해 애쓴다.
2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에도 연주자들이 선생을 찾아 가야금 음감 점검을 부탁했다. 피곤한 기색 없이 가야금을 살피는 선생의 모습에서 새삼 ‘장인정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다른 공예는 모양이 중요하다. 모양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쉬울 수 있는데 소리의 깊이는 쉽지가 않다”며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소리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 선생은 “국악의 길이 좀 더 넓어져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실 세계 속에서 우리의 국악이 제대로 자리 잡기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우리의 소리를 이어가고, 우리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며 국악에 대한 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 편집국 (jubul@chollian.net)